바쁜 일상 가운데 나에게 빛과 희망을 주었던 기쁜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었던 그 어린 시절 중에서 따뜻했던 순간을 추억해 본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곳
내 고향은 꽃 피는 봄이 오면 벚꽃 잎이 흩날리는 곳이다. 정말로 오래된 노래 가사가 생각나며 나를 따뜻하고 벅찼던 추억들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 옛날 엔 버스로 1시간 넘게 달려야 도시가 보였던 동네였다. 눈이 오면 발이 푹푹 빠졌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빠가 마당의 눈을 다 치워놓곤 했다. 이런 날은 버스가 오지안던 곳이다. 여름 장마철이면 집 앞 논들이 빗물로 다 잠겼다. 그 심각성은 모른 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즐거움에 마냥 신났었다. 버스가 1시간마다 한대씩 있어고 이동수단이 귀하던 그때가 있었다. 아주 산골은 아니지만 어렸던 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차멀미로 고생한 터라 시내를 한번 나가기도 힘들었다. 그런 곳이 이제는 관광지로 지정되면서 캠핑장이 생겼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커피숍도 있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붕괴될 위험 때문에 다시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버스만 보던 곳에 이제는 스스로 운전해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갈 수 있다. 시간도 반으로 줄었고 도로가 좋아 너무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그 옛날 추억 이야기로 다시 한번 시끌벅적 웃음꽃을 피웠다.
따뜻했던 순간
확실한 나이는 생각나지 않지만 내 어린 시절 추억은 흐릿하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언니들의 기억은 다르게 기록된 것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자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같은 것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내 어린 시절에는 참 많이 놀았다. 학교 갔다 오면 공부는 하지도 않고 밖에 나가 놀았던 기억뿐이다.. 언니들과 공기 하기 좋은 작은 돌을 모아 공기 따먹기 놀이를 했었다. 마을 입구 버스가 정차하는 곳인데 친할아버지께서 그 옛날에 심어두었던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그 소나무를 둘러싼 네모난 콘크리트 모형 위에 그 돌을 깔아놓고 놀았다. 그땐 그렇게 넓어 보이던 곳이 지금 보면 그렇게 작은 공간이라는 게 한 번씩 놀랄 때가 있다. 그 콘크리트 모형 위로 올라가라면 두 팔에 힘을 주고 힘껏 굴러 힘을 들여 올랐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엄청 작고 낮았다. 참 신기 했다. 지금은 그 공간이 사라지고 없다. 가끔씩 지나며 공기하고 놀았던 곳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리고 눈썰매는 기본이고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가지고 또랑에서 미끄럼틀을 탈 때도 있었다. 눈썰매보다 재미없어 그렇게 오래 타지는 않았다. 또 그땐 겨울 장비가 특별히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밖에서 오래 놀 수가 없었다. 금방 손발이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어린 시절 동상을 달고 살았다. 조금만 찬바람이 불며 손가락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고 밤마다 엄마가 무슨 풀인지는 모르지만 풀뿌리를 끓인 물을 대야에 담아 주시면 손과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리고 잠잘 때면 양말에 메주콩을 넣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자기도 했다. 민간요법으로 그렇게 하면 동상이 났는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런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어려서 자주 아팠다. 엄마 아빠가 여름에 논에서 일하고 오시면 나는 귀가 아파 울고 있었던 기억이 많다. 그러면 엄마아빠는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옆동네 보건소로 달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주사를 맞고 오면 아팠던 귀가 싹 나았다. 지금 보니 중이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주 아픈 나는 약을 자주 먹었다. 알약을 삼키지 못해 약 한 알을 먹으려면 대접으로 한가득 물을 마셔야 할 정도로 알약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약 먹은 후엔 항상 배가 불렀다. 참 그리고 우리 집은 한옥 집이다. 그래서 늦가을이면 집에 있는 모든 문을 다 떼어서 수돗가에 두고 물을 부어 문에 붙어있던 한지를 떼어낸다. 그 과정이 끝나면 다시 문에 한지를 발라 햇빛에 말렸다. 그때가 참 재미있었다. 지금은 문종이가 찧어지지 않아 다시 바르지 않는다. 그때는 누가 문종이 찢었다고 엄마한테 일렀던 기억도 있다. 여름이면 수돗가에 물을 받아놓고 놀았다. 여름이라 지하수는 발이 시릴정도로 차가웠다. 그게 여름 물놀이였던 것이다. 정월대보름이면 남동생이 먹었던 분유 깡통을 주워다 구멍을 내서 쥐놀이를 했다. 어린 손으로 망치를 들고 대못으로 구멍을 냈고 가는 철사를 연결해서 핸드백처럼 긴 손잡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장작을 아주 작게 잘랐다. 그래야 깡통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장작을 부엌장에서 성냥으로 불을 붙여 불씨를 만들었다. 그 불씨를 깡통에 넣어 긴 철사 손잡이를 잡고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면 그 안에 있던 나무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우리는 쥐불놀이를 하며 신난 게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단했다. 망치를 들고, 못을 들고, 성냥을 들고, 놀았지만 누구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았다. 그래서 더 즐거웠나 보다. 가끔 그때가 그립다.
사랑과 관심
우리 아이들이 크면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같이 했던 때가 있었다. 달라진 건 아이들 스스로 놀이 재료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내가 다 준비해 주고 아이들은 체험만 했다. 꼭 체험하러 가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다칠까 봐 불안해서 당연히 부모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과잉 보호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간섭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런 게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가 챙겨주며 아이들이 편안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모든 걸 혼자 하면서 나 스스로 도움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소근육을 키워야 할 시기에 내가 다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믿고 맡겨보고 격려해 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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